쓰지 못했던 소설의 결말
이곳 남반구에 위치한 벙커는 북반구 지역보다 적은 수의 태풍을 견뎌내고 있다. 역시 남반구에 대륙이 적다 보니 태풍 발생 가능성의 지역이 한정된 것이 큰 원인이다. 그렇지만 북반구의 태풍이 적도를 넘어 기후를 바꾸면서 남반구에도 역시나 멸망적 태풍이 발생해 문명을 파괴하는 지금 모습은 예측된 시뮬레이션 결과와 날짜 예측은 조금 틀리지만 동일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새로운 기후 한경에서 적도는 더 이상 지구에서 가장 더운 지방이 아니다. 북반구 태풍으로 인해 뜨거운 해수 온도는 남반구로 내려갔고 이로 인해 남반구에도 명망적인 태풍이 발생했다. 이제 북반구 남반구 모두 극지방, 적도 지방의 기온차는 20도에 불과한 온도로 변화했고, 반복적으로 끊임없이 태풍의 힘이 공급되고 있는 것이다.
남반구의 태풍은 대륙을 만나는 경우 북반구와 비교해 더 많은 비를 뿌리며 지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곳 미국이 준비한 벙커는 위치상 다행히도 최악의 상황에 도달하지는 않고 있다. 우리는 이제 남반구의 첫 번째 태풍의 위력을 무사히 견디고 두 번째 태풍에 대비 중이다. 대서양에서 안데스산맥을 넘는 태풍은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하고 넘어올 것을 분석한 미국은 산맥을 넘어 암반이 갖춰진 지형에 벙커를 만들어 비교적 단기간 저비용에 이곳을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 벙커는 장기 예측상 10년 이내에 태풍이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수준의 강도 이내로 내려오는 예측 결과에 따라 10년간의 생존을 위해 건설되고, 보급품 계획을 가지고 적절한 인구를 시설 내에서 생존 활동할 수 있도록 건설되었다.
기후 예측 시뮬레이션 모델의 결과를 참조하면 여름 날씨가 겨울의 계절로 가는 시기는 변하겠지만 그래도 태양이 기울면 결국 북반구에 겨울이 올 것이고 북반구의 태풍이 사라짐으로 남반구의 태풍 또한 멈출 것이라는 결과를 도출해냈다. 하지만 시뮬레이션 상 태풍이 끝나는 겨울이 오기 전 태풍으로 인해 인류의 절반, 50%의 인구가 줄어들 것을 예측하였고, 올 한 해의 시간을 무사히 생존하더라도 인프라의 피해와 절반의 인구의 감소는 인류 유지를 위한 경계값을 넘어서기에 지속적인 멸망의 흐름을 멈출 수는 없다는 것이 분석의 결과인 것이다.
인구의 절반 50%의 인구에 도달하는 경계의 시점은 상황실의 마지막 카운트다운 시계로 표기되고 있었다. 4개월 전 이번 여름이 시작하기 직전 멸망의 태풍이 올해 여름 시작되는 시뮬레이션 결과가 여러 차례 확인되고, 이후 슈퍼컴퓨터는 더 이상의 시뮬레이션 예측 분석을 멈추고 당장에 다가올 태풍에 대한 분석으로 전환되어 마지막 예측 시간이 상황판 시계에 표시된 이후 지금까지 멈추거나 변경 없이 돌아가던 시계였다. 그 상황실의 마지막 시계는 19D 18:25:30에서 멈춰버렸다. 슈퍼컴퓨터의 예측은 오차 범위 이내에서 틀리지 않았다. 그리고 아직은 인류는 50%의 경계 수치에 도달하지는 않았다. 시간을 변경시켜 시계를 멈춘 원인은 러시아에서 발생했다.
러시아는 세 번째로 지구를 돌아오는 북반구 태풍 노네임을 견딜 수 없이 시설물과 인구를 잃는 것이 예측 범위 안에서 확정되어 있었으며, 그 공포감 속에서 동부 군부 세력은 우랄산맥 동쪽 200km 지역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지역으로 태풍을 향해 핵폭탄을 발사했다. 인류가 가진 가장 강한 힘으로 강력한 열에너지를 발산하고 주변 대기 환경을 급격한 변경점을 가해 날씨를 초기화 시킴으로 태풍은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사라졌던 태풍은 태평양 서쪽에서 다시금 살아났다. 그렇게 지금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태풍은 이제 3개로 증가되어 계속해 문명을 파괴하고 있다.
인류의 마지막 전쟁에서 사용될 것이라 생각되던 핵무기는 인류의 마지막 기후와의 전쟁에서 사용되었다. 시뮬레이션 기후예측팀은 자연 예측 분석 결과였던 카운트다운 예측 결과에 임의적인 조건이 추가되어 기존 예측이 의미가 사라졌다는 결론을 발표하였으며, 카운트다운 시계 역시 그 시점에 정지된 것이다.
기후재난의 공포가 계속되는 환경에서 첫 번째 핵이 사용된 이후 두 번째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두 번째 핵은 미국에 의해 사용됐다. 시설물 파괴와 재난의 공포 앞에서 통제되던 미국에 시스템에도 일부 금이 간 것이다. 러시아의 핵은 다시 살아난 태풍에 의미가 퇴색되었지만 당장의 다가오는 태풍에 대해 직접 부딪치는 피해 없이 지나가게 만들었다. 덕분에 핵에 의한 방사능 오염과 다른 나라에 통제된 시스템에 균열이 생기는 악영향을 주었지만 러시아 지역적으로는 이득을 준 것이었다.
곧바로 지상 그룹의 분석가들의 뒷이야기를 통해 핵에 의한 태풍의 위험에서 탈출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통신 시스템이 상당히 망가진 미국 미주리주 군에서 통제 시스템을 파괴하고 독자적인 발사체를 통해 미국 서해상으로 태풍을 향한 핵을 발사했다. 이후 우주 임시 정부를 중심으로 각 지역에 핵시설 폐쇄의 명령으로 한동안은 모든 핵무기에 대한 폐쇄 작전이 수행되어 미국의 핵사용은 제한되었다고 발표되었지만, 핵에 대한 공포와 핵에 대한 희망의 여론은 양쪽에서 계속 커져갔다.
도심지는 파괴되어 사람이 떠나기 시작했다. 몇 번에 걸친 태풍의 위력은 고층 건물을 모두 쓰러뜨리고 말았다. 구조물이 붕괴되지 않은 건물들도 최근 대부분의 상업건물이 유리 외벽을 가지고 있다 보니 거의 모든 유리 외벽이 파손되어 외벽 없는 건물이 돼버리고 말았다. 사람들은 깊은 지하층을 가진 건물의 지하 공간이 태풍을 피하기 가장 안전한 장소로 머물고 있었는데 몇몇 건물이 붕괴되며 그 지하에 있는 생존자들이 함께 매몰되었고 또 어떤 건물은 침수로 인해 지하가 더 위험한 공간이 되기도 했다. 생필품을 구하기 쉽다는 이유로 도심지에 머무르던 사람들은 위험요소가 많고, 그 생필품마저 모두 파손되거나 약탈에 비어버린 상황에 다른 지역의 대피소에 대한 소문을 따라서 떠나고 있었다.
하지만 소문은 대부분 진실이 아니거나, 시간이 지나 그 사실이 변했거나 대피소의 상황 또한 부정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여러 생존 캠프 간에서 식량전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전쟁의 원인인 식량과 보급품의 불균형은 태풍의 선택에 의해 정해졌다. 태풍의 경로에 의해 비교적 안전히 태풍을 보낸 그룹과 태풍을 피하지 못한 그룹은 서로 불균형에 의한 경쟁관계에 놓이게 된 것이다.
지상의 혼돈 상황은 벙커에도 영향이 있었다. 우선적으로 정보의 차단이 그 시작이었다. 벙커에서 환경을 알기 위해 동작하던 자동센서들은 초기 단계에서 거의 파괴되었다. 이미 이를 대비해 보수 계획이 있었지만 사람에 의한 정보가 들어오지 않자 벙커는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고립된 깜깜한 동굴과 같은 상황이 돼버렸다. 두 번째로 벙커는 외부 활동을 통한 추가 보급을 계획하고 있었기에 보급에 대한 문제도 가지고 있었다. 아직 초기 단계에 이 사항은 당장 문제 되지는 않았지만 고립된 환경에서 생존에 가장 중요한 것이 보급품이었기에 즉시 문제 리스트에 올라 해결을 필요로 했다.
벙커에서는 자체적인 문제점도 발생하기 시작했다. 아직은 예상범위 이내의 문제 발생으로 준비된 자원을 통해 이를 해결하고 있는데 먼저 일부 시설물이 고장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벙커를 보호하는 격벽 문은 벙커의 존재의 이유인 가장 중요한 요소인데 첫 번째 태풍으로 비행기 격납고 문 고장으로 문이 닫히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즉각적으로 가장 우선순위 작업으로 문은 수리되었고 지금은 정상적으로 동작하여 문제상황은 종료되었다. 벙커는 자체가 비상 상황을 위한 시설로 그 구성하는 시설이 사용 불가가 되는 비상상황에는 대부분 대체품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이 좋은 소식이다. 미국이 계획한 재난대응 프로젝트는 아직까지 의미를 지키며 동작하고 있다.
지상에서도 일부 문명을 지키기 위한 그룹이 생겨났다. 안전하고 외부에 대해 포용적인 그룹이 되기까지 여러 고난의 단계를 거쳐야 했다. 그들은 초기 다른 그룹에 밀려 자신의 방호 생존 캠프를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지휘관은 독자적인 플랜B를 구축해두었고 생존에 필요한 보급품과 물자를 충분히 가지고 생존 캠프를 다시 세울 수 있었다. 지형적 이점과 보급의 가능성을 찾아 주변 후보 도심지를 수색해 그중 중소 규모의 도시를 중심으로 건물 잔해를 치워 위험요소를 제거해나가 생존영역을 확보했다. 생존 캠프에서부터 많은 인원을 적절히 통솔하던 지휘관 대령은 지금은 캠프의 민간인을 포함한 공동체의 시장 역할까지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다. 밤을 꼬박 새운 캠프 재건 활동과 헬기와 장비를 활용한 보급 확보 활동으로 잃어버린 초기 캠프보다 안전한 생존지를 만들고 외부의 대립은 미리 봉쇄하고 난민에 대해서는 포용하는 새로운 시대의 문명을 써 내려가고 있다. 때에 따라 태풍을 피하기 위해 효과적인 피난 이동 작전을 수행했고 근방에 추가적인 대피 캠프를 새워 재난에 대응했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태풍 앞 위태로움에서도 그들은 계속적인 삶의 연결을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제 국경은 없어졌다. 자연으로부터 항상 안전한 지역은 없어졌고 유목민이 생겼다. 도시가 없어지거나 오히려 도시였던 곳이 더 위험한 지역이 되었고 캠프 또한 이동하지 않는다면 태풍의 중심부 근방에서는 무엇도 살아남을 수 없었다. 우주 임시정부와 벙커는 계속적으로 외부 생존자를 위해 태풍의 진로와 규모의 예측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다. 벙커 외부 생존자들의 모습은 밖에서 살 그들의 생존뿐 아니라 벙커 내부에서 고립되어 살아가는 생존자들에게도 희망적인 삶을 위한 유일한 연결 줄인 것이다.
여러 문제가 상황에 따라 변화하면서 인성과 선미는 외부 작전 팀 소속이 되었다. 태풍이 발생하고 마지막 로켓 발사 이후 재사용 로켓은 3번에 걸쳐 성공적으로 우주에 보급을 제공했다. 하지만 3번째 발사에서 가지고 있는 발사 가능한 마지막 로켓의 수거에 실패하여 우주로의 보급 작전은 종료되었다. 외부 작전이 로켓 발사에서 외부와의 소통을 위한 작전으로 변경되었고, 내부에서 비기술인원을 작전 그룹으로 편성하며 둘은 그렇게 외부 활동을 위한 팀으로 편성되었다.
밖으로 나가는 활동의 위험성은 벙커 생존자에 대한 외부 생존 그룹의 배척과 환경에 대한 문제가 가장 컸다. 둘이 소속된 팀이 수행하는 일은 아직 위험이 존재하는 특별한 일보다는 민간인원을 활용하기 위한 교육과 단순 업무의 수행에 있었다. 첫 번째 비행에서 파괴된 도시에 대한 정찰 및 안전 구역 확보를 수행하였는데 하늘에서 내려다본 태풍이 지나간 흔적의 모습은 처참했다.
처참한 풍경은 안전한 벙커에서 생활하는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사람이 살았던 폐허의 도시는 1년 전만 하더라도 날씨에 대한 생각이라고는 비가 오는지 오늘 하루 얼마나 더울지 단편적인 생각만 하며 살았을 사람들의 흔적일 것이다. 그 자취를 바라보며 선희가 텅 빈 마음으로 텅 빈 이야기를 건넸다.
서울로 가고 싶다.
서울도 모두 부서지고 말았을 건데 여기와 크게 다를 게 있을까?
그렇겠지. 그래도 서울 가서 커피 마시고 싶다. 여기서 산을 바라보고 있으며 지구 반대편에 서울은 멀쩡히 그대로 서있을 것 같아.
나도 상상하기에는 어딘가 평행우주 넘어 그곳의 서울에는 그 상상 속의 서울의 모습이 그대로 있을 것 같다.
서울이 무너졌든 아니든 부서지지 않고 그대로 있는 출퇴근 만원 지하철이 다니고, 차들로 교통체증 가득한 머릿속에 있는 서울에 대한 생각이 변하지 않는 한 그리운 건 어쩔 수 없을 것 같아. 흔적만 남은 서울에라도 직접 가서 그 머릿속 생각을 지우고 싶다.
텅 빈 이야기에서 인성은 조금이라도 희망찬 이야기를 넣고 싶었다.
내가 이야기한 평행우주의 서울은 어떤 식이던 지 진짜 있을 거야. 우주의 공간은 아직 우리가 들여다보지 못한 공간들로 가득 차 있으니까. 양자역학이라는 것도 들여다보지 못한 영역이었지만 지금은 원자 단위로 측정하면서 실제 하는 걸 확인했듯이 말이야.
그걸 혹시 희망찬 이야기라고 하는 거야. 이 이과생아.
그래 별로 희망찬 이야기는 아니지. 그래도 우리의 시간이 멈추지 않았고 그 시간을 바쁘게 외부 활동 작전을 하며 채우는 것이 바로 희망이지 않겠어. 이렇게 시간을 이야기로 채우는 것도 중요하고 말이야. 이런 이야기가 내가 말한 평행우주의 갈림길을 만드는 거라니까.
뭐. 그래 지구가 멸망하던 아니던 시간은 똑같이 흐르는 거니까.
그래 힘든 오늘 하루 일도 끝마치고 즐거운 벙커 집으로 돌아가야지.
해가 지는 시간은 아직 한참 전이지만 벙커와 가까운 지역의 작전으로 일찍 헬리콥터를 타고 둘은 이야기하며 벙커로 귀환할 수 있었다.
벙커에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희망을 꿈꾸는 그룹 속에서 절망에 빠진 그룹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동굴 속 생활처럼 사방이 막힌 벙커의 생활에서 심리 안정을 위한 프로그램이 있어 사람들은 서로 간에 모여 이야기를 하고 게임을 함께 즐기는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모임에서 하는 즐기기 위한 이야기와 모임에서 있는 사람들의 자신의 표정은 서로 다르게 표현되는 건 어쩔 도리가 없었다. 밖으로 드러나는 모임에서 이야기되지는 않지만, 사적 모임 간에 절망의 이야기가 옆에서 흘러 들어오는 경우는 점점 많아졌고, 아직 공식된 그룹이 만들어지지는 않았지만 그 그룹에 인원이 한 명 한 명 추가되고 있었다.
슈퍼컴퓨터 엔지니어 중 한 명도 지금 막 출력된 결과 리포트를 들고 그의 생각이 절망의 그룹에 가입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컴퓨터는 핵이나 사람들의 이동 그리고 외부에서 직접 확인된 기후의 새로 주어진 조건들을 가지고 중기 간의 기후예보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 슈퍼컴퓨터 모델 중 하나가 지금 기후 변화로 인해 중기 간 예측상 3년간은 겨울이 오지 않을 것이라는 기후 모델 결과를 시뮬레이트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