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나는 소설의 마지막 화를 모두 작성하여 미국으로 전송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완결에 대한 어떤 희열은 없었다. 아마도 완결에 대한 홀가분한 기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현실이 기쁨의 영역을 모두 가려 버린 것 같다. 밖에 하늘을 올려다보니 지금 날씨가 내 기분을 대신 이야기해주는 것 같다. 하늘은 구름이 흩어져 사라지는 화창한 모습이었지만 땅에는 비바람이 휩쓸고 간 처절한 모습을 그리고 있다.
예보된 태풍이 한반도를 지나갔다. 태풍의 위력은 고층 빌딩을 넘어뜨리는 소설에 내오는 아포칼립스 수준은 아니었지만 지반에 단단하게 지지하고 있지 못한 일반 건물들은 무너뜨리고 넘어뜨리는 일반적인 태풍을 월등히 넘어선 위력이었다. 아파트보다는 단독 건물이 많이 무너져 역시나 예보됐던 만큼 이제까지 경험할 수 없었던 무시무시한 위력을 보여준 태풍이었다.
자연이 가져온 피해는 자연에 의해 그 크기가 결정되었다. 큰 건축물은 그 구조 자체에 피해를 입지는 않았지만 유리창은 모두 그 힘을 견디지 못해 단독 건물만큼이나 많은 피해를 입었고 다행히 적은 피해를 입은 지역은 역시나 산을 끼고 그 바람을 피한 지형이었다.
태풍은 중국 일본에까지 그 힘의 영향을 줬다. 태풍은 그 크기가 우리나라를 모두 덥고도 중국 동부와 일본까지 태풍의 팔이 닿을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태풍은 쓰나미급의 파도로 일본 해안가를 침수시켰고 남쪽에 위치한 일본의 작은 섬에는 사람이 이룩한 자취를 모두 사라지도록 만들었다. 그래도 중심부를 피해 간 중국과 일본은 무사히 태풍을 견디었다고 한다.
서울은 홍수에 이어 태풍의 중심부가 국토를 통과하며 더 많은 피해가 있었다. 홍수로 발생한 완전히 치우지 못한 쓰레기 더미는 바람에 날아다니며 큰 피해를 발생시켰다. 이는 미리 대비하지 않아 피하지 못했다기보다 너무 많은 양의 쓰레기로 피할 방법이 없는 문제였다. 사실 쓰레기 더미를 제외하더라도 많은 노후된 시설의 물건들이 태풍의 중심 부근의 강한 바람에 부서져 날아다닌 문제가 있었기에 태풍의 강도가 더 큰 이유였다.
그래도 임시 내각 정부는 꽤나 잘 돌아갔다. 단순화된 임시내각은 단순히 생존에만 집중하여 일을 진행하였기에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정부의 역할의 많은 부분은 컨트롤타워 없이 현장에서 직접 업무를 처리했으며, 임시정부는 큰 피해를 입은 소방 관계 장비들을 우선적으로 빠르게 회복시켜 좋은 효과를 보았다. 업무의 처리에 있어 반대하는 세력은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상황에 존재할 수 없었으며, 능력을 가진 사람은 그 능력을 평소보다 몇 배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었고 능력이 없다 하더라도 조용히 지지하는 힘을 보태어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진짜 이유는 위에 있는 사람의 능력이 아닌 아래서 직접 뛰고 손을 쓰는 사람들의 힘일 것이다. 항상 그래왔듯이 모두에게 닥친 큰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 하나로 뭉친 국민들의 모습인 것이다.
태풍 후 정부는 복구 대신 다음 태풍의 대응을 하기로 결정했다. 국토를 통과한 태풍은 한참을 지나 힘이 줄며 소멸되었고, 이런 태풍이 올해에만 몇 개 더 발생할 예정인 것이다. 태풍이 강력하고 그 크기가 거대하다 보니 하나하나가 모두 비껴가기 기대하기는 어려운 모습이었다. 사람들도 하루하루 지쳐가는 모습이었다.
미국에서도 역시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초대형 허리케인이 발생했다. 아무리 거대한 허리케인이라도 미국 서부까지는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지만 동부지역은 어디 할 것 없이 태풍의 피해로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되었다.
미국은 재난대비 프로토콜이 발령되었지만 소설에서처럼 대규모 시스템으로 동작하지는 않았다. 단지 일상적으로 대비하는 재난 프로토콜로서 동작하는 것 같았다.
동부 지역에서 서부 방향으로 가는 대규모 피난 집단이 여정을 떠났고 피난으로 비어진 지역에서는 태풍의 공포와 함께 여지없이 폭동이 끊임없었다. 정부는 피난계획 이외의 특별한 조치를 가지지 못했고 상황을 정리하지 못했다. 정부 보급은 계획이나 실행이 없었고, 상점은 약탈 당하거나 견고하게 잠겼으며 물자들의 이동은 모두 불가능해 사람들은 물품을 구할 수 없었다. 의료 그리고 정부 시스템도 며칠간은 완전히 셧다운 되는 상황에서 중소 도시지역 중 몇몇 곳은 지역 방위군 일부가 참가한 시위대도 발생할 만큼 문제는 심각했다.
뉴욕에서 허리케인의 강풍을 견디지 못한 빌딩이 하나 무너졌다. 단지 하나의 빌딩이 무너졌고 비어진 오피스 빌딩과 비어진 시가지였기에 직접적인 인명피해라고는 경비인원이 한동안 건물의 아래층 구역에 고립됐다 구조된 것이 전부였지만 사람들의 패닉은 큰 역효과를 몰고 왔다. 사람들은 앞뒤를 볼 것없이 맨해튼을 빠져나가기 위해 길에 몰렸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수많은 사고로 인해 도로가 통행 불가능해졌다. 차량을 버리고 맨몸으로 탈출하는 인파 속에서 몇몇 사람의 압사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빌딩이 무너진 원인은 운 나쁘게도 빌딩과 바람의 공명이 일치하여 건물을 흔들다 그 구조를 부러뜨린 것이었다. 그리고 공명이 빌딩 설계 당시 견딜 수 있는 바람의 세기보다 약한 바람에서 발생한 것은 건물 고층의 보수공사 작업으로 그 구조와 고층부의 무게가 변화했기 때문이었다. 여러 상황적 원인과 자연의 원인이 겹쳐 발생한 사고였고 안타깝게도 이를 알 수 없었던 사람들은 패닉에 빠져 사망자가 발생하는 사고로 이어진 것이다.
코로나로 일부 미국의 산업과 경제 방향 그리고 국가 간 관계가 지역화된 후 이를 회복하고 있었지만 허리케인의 피해로 미국은 다시 미국 우선주의로 폐쇄정책을 강화했다. 세계 경찰을 포기하고 우방국의 중요한 해외기지를 제외한 모든 군사력을 철수시켰다. 미국은 그들의 브레인 집단을 통해 예측하고 새로운 계획을 발표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대비하지 못했고, 대응 행동이 계획대로 실행하지 못하며 조금씩 균열 가고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내가 전송한 소설의 영향일까, 아니 내가 보낸 건 시간적으로 얼마 지나지 않았기에 이런 중대한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을 것이다. 미국은 기후재난에 핵폭탄으로 대응하기로 발표했다. 연구자들의 예측 모델에 의해 극지방 부근에 지역적으로 폭발적인 에너지를 통해 대기의 흐름을 움직여 기후를 상당 부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란 예측을 기반으로 계획을 발표했다.
나는 이런 현실에서 소설과 지금 상황이 어디까지 일치하는지는 확인하지는 못했다. 내가 미국으로 넘어가 상황적 정보를 더 많이 얻었다면 그 차이점을 알 수 있었을까? 사실 나는 그것을 확인할 필요성도, 확인해서 얻을 수 있는 효과도 그다지 느끼지 못했기에 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소설 속 현실과 내가 있는 현실 두 곳이 서로 간에 연결되어 영향을 미치듯이 가로세로로 얽혀 직물구조로 짜여있는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했다. 양자역학적 관점에서 생각할 때 두 곳은 동시에 존재한다. 사실 좀 더 정확한 정의적 내용으로는 다중우주에 좀 더 가까울 것 같고, 다차원 우주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용어를 혼동하여 쓰고 있는 것은 내가 이것의 정의를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양자역학적이라는 말을 하는 이유는 지금 내 머릿속 두 세상의 혼돈과 겹침은 생각 또는 관찰에 의해서 결정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양자역학의 세계에서 관찰이 그 양자 입자의 성질을 정의하고 위치를 특정하듯이 내가 소설 속 세상을 머리에 넣고 생각함으로 하나의 세상이 정의되고 그것을 다시 현실과 비교하는 생각을 할 때 동시적인 두 개의 상황을 비교할 수 있는 지점을 만들기 때문이다. 내가 인성을 바라보고 인성이 나를 바라보는 동시에 2개의 세상이 서로 얽혀있어 보이는 것이다.
머릿속 양자 입자에 대한 생각이 끊임없이 얽히면서 이해되지 않는 머리가 더욱 복잡해지는 상황에서 조금 단순하게 본다면 두 개의 세상이 존재하는 다중우주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두 개의 세상은 어떤 차원 넘어서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의 세상에서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고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떠올릴 때 새로운 다중우주 하나가 더 탄생했다. 관찰할 수 없는 우주 끝 어딘가 차원의 벽을 거쳐 그 세상에 들어가면 내 머릿속에 있던 생각들이 모두 거기에 있을 것이다.
나는 이런 철학적 양자역학에 대해 자주 생각했었다. 양자 역학은 현실 세계 원자의 크기의 미시적 세계로 들어가면 실제로 존재하는 물리적 법칙이다. 하지만 물리적 법칙이 모든 부분에서 아름답게 완성되지 않았고 잘 이해되지 않음으로 그 의미적 존재는 여러 갈래 길로 갈라져 소설에서도 볼 수 있고, 생각 속에서도 볼 수 있고 그렇게 현실의 여러 곳에서 수시로 만날 수 있는 철학적 영역에서도 실존한다.
나에게 내일도 매일 해오던 업무시간이 된다면 컴퓨터 앞에서 일을 한다는 사실이 있다. 이 사실은 동시에 나는 내일 일을 하지 않고 미국에 갈 것이라는 사실과 겹쳐 저 있는 것이다. 그리고 확률적으로 미국에 갈 확률이 들어맞게 된다면 그 상태는 하나로 고정될 것이다. 이렇게 슈뢰딩거의 고양이와 같은 상황을 만들 수 있고 그것이 현실과 서로 다아 있다. 나의 현실 생활은 항상 양자의 얽힘에 걸쳐 존재한다.
개발자는 항상 양면을 모두 바라봐야 한다. 모든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으면서 동시에 모든 프로그램이 어려워 만들 수가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절대적으로 다른 두 가지 생각을 동시에 해야 함은 다른 일로 생활을 꾸려가는 사람들에게 있어 이해되지 않는 화성에서 온 개발자의 모습일 것이다.
이런 개발자인 나는 온난화로 점점 더워지는 지구의 미래 모습으로 긍정적이고 평화로운 환경의 세상을 생각하고, 동시에 소설 속 아포칼립스 모습의 환경 재앙적인 세상을 동시에 생각했다. 지금의 모습에선 평화로운 세상의 상상이 머나먼 꿈나라 같은 이야기로 떠올랐다. 두 세상이 머릿속에서 서로 간에 얽히기 시작하면서 평화로운 세상 또한 일상이 지속되는 모습에서 어느 시점에 크든 작든 지구 어느 나라에선가 기후를 이기지 못하고 사람들이 휩쓸려가는 모습으로 상상되어갔다. 그것은 사실이다. 어떤 훌륭하게 완성된 프로그램일지라도 어디엔가 버그를 가지고 있다는 법칙처럼 어떤 평화로운 세계일지라고 재난은 직면하게 된다. 두 세상은 다시 서로 가로질러 겹치게 되고 내가 생각한 두 가지 방향은 하나의 결말을 맞이하고 있었다.
부정적인 미래에 대한 생각은 사람을 우울하게 만들고 활력을 잃어버리게 하지만 미래가 다가올 때 대응할 수 있게 하는 버팀목이 되기도 한다. 내가 생각하는 모습을 과거에 알았다면 미래가 변했을까.
과거와 미래의 시간에 대해 생각하다가 양자역학이나 평행우주 다차원 우주같이 또 다른 희망을 가진 세상이 시간 축을 거스르지 못하는 모습이라는 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두 세계 아니면 그 이상의 많은 세계는 같은 시간 아래 나눠져 있는 모습이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세계에서 차원을 넘어 어느 세상으로 가더라도 이 세계는 시간을 거슬러 평화로운 시절로 갈 수 없고, 그런 일상의 세계에 도달하더라도 차원을 이동할 때 이곳 세상과의 겹침으로 그곳 역시 어느 시점에 버그를 일으키고 기후 재앙을 직면해야 할 것이라고 상상했다.
나는 생각의 끝까지 다다랐고 더 이상의 머릿속 세상의 창조와 멸망을 멈추고 비구름 없는 하늘을 바라봤다.
그리고 나는 인성에게 질문했다.
나는 나에게 질문했다.
진짜 환경 때문에 인류가 멸망하는 건가요?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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