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02

(습작소설)장마-02

 

한 달전

오래간만에 비가 그치는가 싶더니만 흐린 하늘은 여지없이 먹구름이 되고 다시금 오락가락비를 흩뿌리고 있다. 그래도 이 정도 비에는 오늘 토요일 주말에 공기를 쐬기 위해 밖으로 외출과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 외출할 만한 날씨임은 분명하기에 간만에 잡은 주말 약속을 취소하지 않고 준호와 만남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인지 길거리는 활기를 띠고 있다.

나는 준호와 만나 집에서 멀지 않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프랜차이즈 치킨집에서 외식을 하기로 했다. 약한 비가 오는 날씨임에도 흐림으로 예보된 날씨 덕분에 치킨 집 홀 안은 기름냄새를 가득 채우며 쉴 새 없이 치킨을 튀기고, 배달 오토바이는 계속해서 오가며 포장된 치킨을 배달하고 있었다.

그동안 장마 기간에 몇 차례 도로에 물이 차면서 배달이 불가능한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지금도 비가 약하게 오는 날씨임에 오토바이 배달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배달이 힘들다 보니 오토바이 배달 일을 중단한 기사들이 많아져 배달이 전보다 힘들다는 인터넷 뉴스 기사가 몇 차례 나온 만큼 빠른 배달은 더 쉽지 않다. 그래도 그동안 비 때문에 배달을 참아왔던 사람들이 많았던 게 분명하다.

배달도 배달이지만 역시 직접 와서 먹는 치킨은 기름의 뜨거움을 그대로 유지하는 바삭한 튀김옷에 그 맛이 더욱 일품이다. 이곳은 배달도 많지만 홀도 나쁘지 않은 컨디션을 유지한 요즘은 많지 않은 그런 매장이다. 다른 매장들은 배달만 위주로 한다던가 홀 장사 위주로 하는 방식으로 매장을 운영해 안에서 먹지 못하거나, 홀 가격을 비싸게 받거나 했지만 이곳은 가게 안에서 배달비를 뺀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어 내가 선호하는 음식점이 됐다.

우리는 프라이드 치킨과 큰 콜라 한 페트를 주문했다. 치킨에는 맥주가 일반적이겠지만, 최근 코로나로 술을 안 먹고 집에서 홀짝홀짝 콜라를 마시다 보니 콜라를 더 선호하게 되어버렸다. 그리고 준호는 술 없이 자유로이 만날 수 있는 술을 선호하지 않는 그런 친구였다. 튀겨지는 치킨을 기다리며 나는 준호에게 그동안 쓴 소설의 초입부 그중에 우선 정리된 1편을 보여줬다.

이거 주인공 두 명 너하고 나를 쓴 거잖아. 내가 왜 여자 역할이야?

준호는 글을 끝까지 보더니 불만인 듯 기쁨인 듯 중간 정도로 물었다.

뭐 그런 것도 있겠지만 여주는 여주고 너는 너야.

긍정도 부정도 아닌 정도로 의미 없는 답을 했다.

준호와의 만남에는 보통 그런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낸다. 의미 없는 이야기를 하고 적당히 보통의 음식을 먹고 특별한 거 없이 시간을 죽이는 특별한 친구 관계인 것이다. 가끔 기회가 된다면 새로운 활동을 하겠지만 동네 친구 관계라는 것이 특별함보다 보통의 일을 찾는 것에 더 집중하는 관계라 생각한다.

소설 속 선미가 공무원이란 설정은 친구 준호가 공무원이라는 것에서 그 설정을 가져온 것에 부정할 수는 없다. 뭐 국가직 지방직 뭐 이런 차이점이 있을지는 몰라도 소설가가 아닌 나에게 창작보다는 자전적 이야기를 쓰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도 내가 너 국가직으로 등급업 시켜줬어. 뭐 재벌가 3세 유복한 캐릭터라도 시켜줄까?

시간을 죽이는 이야기를 하는 동안 주문한 치킨이 접시에 담겨 테이블에 나왔다. 본격적으로 콜라를 한 잔씩 따르고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는 치킨을 포크로 집어먹기 시작했다. 집에서 혼자 먹을 때는 캔 콜라 하나 이상을 마시지 않지만 오늘은 외식이니 만큼 자유롭게 먹을 생각으로 탄산을 음미하며 한 번에 컵의 절반을 마신다. 이렇게 마시다 보면 맥주를 먹는 것보다 몸에 더 안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몸에 좋지 않은 게 맛있는 것은 법칙 같은 것이다. 그렇게 그냥 맛있는 음식을 즐기고, 이야기를 즐기는 이 시간이 행복인 것이다.

그리고 너는 이름이 인성이 뭐야. 네가 무슨 조인성이야? 심탱이 뭐니 니가 귀염상이야? 완전 락이다.

우리는 흔한 친구 사이의 대화처럼 츤데레한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그래도 우린 어려서부터 만나다 보니 어려서 하던 말투 그대로 남아 공격적인 날카로운 말로 이야기하지만 욕을 섞어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대신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욕보다는 어른의 언어와는 다른 비속적인 말을 쓰곤 했다. 사용하는 비속적인 언어는 저급하거나 욕된 말은 아니었고 다른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로 이루어진 대화였다. 단어들은 특별한 관계를 증명시켜주는 단지 의미 없는 단어들로 증표와 같은 것들이다.

너 심탱이 뭔지 모르지? 너 별명이 뭐야?

쭈니쭈니? 써니써니 처럼? 준. 쭈니.

이름에 준자가 들어간 사람의 별명은 쭌 쭈니고. 이름에 선자가 들어간 사람의 별명은 썬 써니야. 이름에 심자가 들어가면 다 심탱인거지. 내가 쭌 썬을 아는 사람만 해도 몇 명인지 모르겠네. 한결같이 다들 쭌이고 썬이지. 내가 명동 길거리에서 너 별명을 크게 부르면 한 열댓 명은 뒤돌아볼 거다.

지난번 인터넷에서 연예인 인터뷰를 보다 심씨 성을 가진 여자 연예인이 등장했는데 별명이 심탱이었다. 심지어 다른 여자 연예인은 심탱티비라는 유튜브도 운영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둘은 서로 다른 사람이지만 둘은 심탱이다.

그래 인정. 그리고 경은 갱이지.

오 아는군 경은 갱이더라. 이건 뭐 남자 여자 구분하질 않더라. 남자 별명도 갱 여자 별명도 갱. 앞글자 뒷글자 구분도 안 해. 다 갱이야.

이거 소설 속에 미국 나사와 스페이스엑스 음모론이라니 나오는 이야기들 막 짜 맞춘 거 아니야?

내가 글 쓰는 솜씨가 있냐? 그냥 짜마추는 거지. 너 영화 투모로우 안 봤어? 대작은 미국이 배경 이어야 하는 거야.

어 나 그 영화 안 봤는데 뭐야.

재난 영화로 잘 만든 영화인데 안 봤다고. 그러니 이 소설을 제대로 못 보지. 기후재난 영화인데 꼭 봐봐.

내가 쓰는 건 지구 멸망이 다가오는데 미국만 그걸 알고 혼자만 따로 대응 중인 거지. 최근 급격하게 진척되고 있는 우주산업 경쟁이 갑자기 나온 게 아니라는 거야. 이런 게 음모론이지.

그래도 음모론이면 논리라는 게 있어야 그 음모론 좋아해 주는 사람도 생기고 그런 거 아니야?

내가 이 글을 쓰는 게 그냥 쓰는 게 아니지. 얼마 전에 우리나라도 로켓 발사하고 스페이스 엑스도 로켓 발사하고 나사도 이번에 발사하고 진짜 50년간 가지 않던 우주에 갑자기 이렇게 많이 가는 거야. 내가 관심 있게 봤지. 근데 이상하게 나사와 스페이스 엑스의 경로가 너무 다른 것 같지 않아. 달과 화성이라니 한쪽에 집중해야 데이터도 쌓이고 자원도 캐고 할까 말까 한데 말이야.

그리고 사실 이게 모여서 소설 키워드가 된 이유는 이게 중심이 아니었어. 지난 미국 대선에 언급된 환경 협약 내용이 요즘 환경문제 기사로 나오더라. 그리고 마지막 결정적인 트리거는 올해 장마였지.

쏘. 지난번에 이야기한 반지하.

빙고. 반지하가 트리거였지. 그리고 미국 대선 이야기가 음모론의 핵심이야. 얼마 전 기후 문제 기사 내용에서 당선된 미국 대통령이 탈퇴한 기후협약에 다시 가입하기로 한 거야. 미국이 기후협약에서 탈퇴한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야. 세계경제의 중심인 미국인데 그러면 환경보호는 하나마나인 협약사항이 돼버리는 거잖아. 그래서 인터넷 기사 검색해서 또 찾아봤지.

미국이 정식으로 탈퇴를 통보한 게 2019년 11월이란 거야. 근데 이 협약이 3년이 지나야 탈퇴를 선언할 수 있다는 거지. 그래서 탈퇴를 결정한 게 2017년 6월이래. 이때 머릿속을 스치는 게 팔콘 헤비. 내가 기억하기에 그 정도쯤 연도로 알고 있었지. 이때 재사용 로켓 착륙하는 모습이 진짜 멋있어서 기억하지. 찾아보니 그게 2018년인 거야. 그리고 나사가 진행하는 아르테미스 시작이 언제일까? 아르테미스도 역시 2017년 12월이야. 이렇게 동시간대에 걸친 여러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게 과연 우연일 뿐일까. 그리고 비트코인이 상승한 때가 언제냐 하면 2017년 12월에 2000만 원을 처음으로 찍은 시점이기도 했던 거야.

사실은 미국이 환경재앙을 예측했고 멸망을 피할 수 없는 걸 알게 된 거지. 그리고 이에 대비해 다크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한 거야. 우주로 방주를 보내기 위해 비트코인을 활성화시켜 필요한 자금을 모으고, 우주 산업에 투자해 우주선을 만드는 거야. 미국은 기후협약을 탈퇴해서 미국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그리고 이후에 이번 새로운 정부로 정권이 바뀌는데 초기 대선 때 정책방향은 나사 프로젝트에 자금을 줄이고, 기후협약에 다시 가입하는 게 있었어. 그런데 정작 지금은 사람들의 관심이 없는 건지 새로운 미국 대통령이 선출된 이후 이런 이야기가 많이 줄어든 거야. 프로젝트 자금을 줄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달로 우주선을 보내고, 기후협약에 다시 가입하더라도 느리게 진행할 수밖에 없는 사항이라고 일반적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니까 특별한 활동을 하지 않으면서 돈을 안 쓰고 있는 거지.

미국의 경제력 군사력이 세계 1위로 월등함을 보여서 미국과 다른 모든 나라 군사력을 비교해도 미국이 이길 정도인데, 미국 혼자 어떤 결정을 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는 거지. 그것을 바로 보여준 게 환경 협약 탈퇴 아니겠어.

내가 이 소설을 끝까지 못 쓰고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미국정부에게 무슨 일을 당한 거라 생각해서 네가 그 음모를 끝까지 파헤쳐 줘야겠어.

열정을 불태워 쓰고 있는 소설이었기에 나는 가지고 있는 모든 언어의 수식어를 동원해 소설의 내용을 설명했다. 하지만 역시 마지막 미국정부에게 무슨 일을 당하는 이야기가 이 대화가 단지 보통의 동네 친구 간의 쓸데없는 시간 죽이기로의 안주 역할을 하는 이야기 임을 보여주고 있다.

야. 그래도 나름 느낌 있네. 글 잘 쓰네.

그래 봐줄 사람도 없었는데 한 명은 고정 독자가 생겼으니 계속 써야지. 내가 말한 영화 투모로우도 그렇고 내가 쓰는 글도 있는데 환경문제 뭔가 문제가 되긴 하겠지.

근데 비가 와서 지구 멸망은 아니지. 지금은 코로나처럼 세균으로 인해 인류의 멸종이 가장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 아니겠어. 코로나로 바로 멸종하지는 않겠지만 또 계속해서 전염병이 나오고 있잖아.

그지. 나는 전에 태양이나 소행성 같은 우주 요소로 인한 멸종이 가장 높아 보였는데 이번 코로나를 보고 세균 때문에 인류가 멸종하는 게 가장 확률 높아 보이더라. 그래도 세균은 100% 멸종은 불가능 한 것처럼 보이던데, 결국 면역이란 게 동작해서 일부는 살아남는 수 있다는 거야. 그 이후 남은 일부 사람이 살수 있느냐 멸종하느냐가 문제지. 비가 와서 멸망은 그보다 더 힘든 건데 소설이니까 힘을 주는 거지. 재미가 있어야 하잖아.

요즘 인터넷 날씨 댓글에 지구가 아파해요. 글이 있고 그 글 아래 지구는 아프진 않아요. 인간이 아픈 거지. 이런 거 있잖아 지구는 해봐야 고작 약간의 기온이 오른다는 거지. 비가 오거나 태풍이 와도 지구가 부서지는 건 아니니까. 세균이나 기후 문제나 지구가 회복하기 위해 인간을 죽이는 거라고 하잖아.

술도 먹고 있지 않았고, 때로는 술이라 말하지 않는 맥주조차 먹고 있지 않았지만 안줏거리 이야기를 많이 한 만큼 우리는 이야기를 하며 가볍게 콜라 잔을 부딪히고 크게 들이켰다. 한여름 치고는 비교적 덜 더운 날씨지만 습도로 찜찜한 요즘의 날씨를 씻어 주는 청량감에 기분이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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