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 후
물은 결국 팔당댐을 넘어 서울이 잠겼다. 준호와 난 한강에 도달했지만 막혀있는 도로 그리고 서초구청까지 가는 길이 시간 상 도착 불가하다는 판단을 내려 바로 차를 북쪽으로 돌렸다. 중랑천 부근으로 올라가는 길은 위험하다고 판단했기에 어린 시절 살던 용마산 방향으로 차를 이동해 범람한 물길이 잠잠해지기는 다음날까지 머물렸다.
물은 해가 지기 시작하는 시간에 밀려오기 시작했다. 석양에 반사된 강에서 만들어진 파도가 상류에서 만들어졌다. 파도는 강 양쪽 변 고수부지에 부딪쳐 부서지는듯하다가 바로 다음에 오는 파도에 먹히면서 강 수위가 점차 높아졌다. 방송에서는 지난밤 강물이 범람하는 영상을 확인해 이번 홍수 피해 뉴스를 계속해서 진행했다. 피해가 서울을 관통하며 광범위하게 발생하여 새로운 영상들은 끊임없이 방송을 통해 공개됐다. 어두운 시간에 촬영된 한강이 침수되는 모습에서는 고수부지의 나무나 시설이 잠기는 모습은 떨어지는 방송 화질로 알아보기 어려웠다. 물이 다가오는 모습은 불이 켜져 있던 강변의 도로에 가로등이 하나씩 꺼져감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다행히 한강 부근 도로에서 교통혼잡 속에 있던 차들은 우리처럼 시간을 계산하고 뿔뿔이 흩어져 피하는 모습에 직접적으로 물길에 휩쓸린 차량은 없었다. 하지만 한강변 도로나 지하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던 차들이 침수되는 모습은 거침없었다. 파도치며 다가오는 물결이 닿을 때 주차된 차들은 치워지는 장난감처럼 서로 부딪히며 쓸려갔다. 수위를 줄이지 않고 다음 파도가 칠 때 높아지는 물에 뜬 차들은 서로 부딪치고 뒤집어지기도 했다. 한강변 아파트의 지하주차장은 홍수를 견뎌낼 방법이 없었다. 일순간 지하주차장으로 쏟아져들어간 물길은 지하를 완전히 물에 잠기게 만들고도 1층까지 모두 잠기도록 밀려왔다. 2층 이상의 집들은 그래도 직접적인 피해를 당하지는 않았다. 대신 수많은 아파트에서 고립된 사람들이 수없이 나타났다.
물이 빠지지 않은 한강변 도로는 1미터의 수위의 물로 가득 차 있었다. 물이 바다로 모두 빠져나가는 데는 하루 정도는 더 걸릴 것이라고 방송에서 예보되었고 심지어 밀물이 오는 시간은 한강 하류 바다와 멀지 않은 지역은 수위가 다시 높아져 또 다른 침수 피해가 예상된다고 한다.
서울의 한강 상류 경기도 구역의 하남 미사와 구리는 강폭이 좁아지는 지점과 비교적 낮은 평평한 지형으로 인해 넓은 면적으로 침수되었다. 오래전 조선 시대 서울의 한강이 구불구불하고 4대문 안쪽이 서울인 시절에 이 지역은 서울의 침수를 막아주는 역할을 했을 것이라 상상했다. 서울의 잠실 또한 오래전에는 서울이 아니었기에 비슷하게 침수되는 지형이었던 것 같다. 잠실은 침수 피해가 가장 많은 지역 중 하나가 되었다. 석촌 호수는 이제 인공 호수의 모습이 아닌 거대한 호수 지형처럼 넓게 커져 있었고 물이 빠지는 시간까지 그 호수 안으로 들어가 버린 높은 롯데 타워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강남구는 첨단의 회사들이 모여 있고 트렌드를 주도하는 젊은이들의 거리의 모습과는 다르게 그동안에도 많은 비가 오는 시기엔 침수 피해로 뉴스에 나왔듯이 이번에도 강남 소나타라 불리지만 웬만한 전세금 보다 비싼 외제차들이 줄을 서서 침수되었다. 내가 꿈에서만 그리던 차들이나 그보다 더 비싼 슈퍼카들이 침수된 모습을 보는 것은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강남구는 건물이 들어설 때부터 오르막과 내리막으로 비가 모이는 지형이 군데군데 있어 여지없이 넘쳐흐른 물을 가득히 담게 되었다. 한강으로 물이 모두 빠지기 전에는 도심지의 물도 빠질 수가 없는 상태이다.
여의도는 모든 사람이 소개된 섬이 되었다. 여의도 아파트의 모든 집은 비어졌으며, 국회의사당은 침수되어 비워지게 되었다. 국회가 멈춘 것을 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쓸데없이 많은 세금을 축내며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이 사라져서 속 시원했을까. 아니면 비에 침수되어 또 세금이 들어갈 일들에 답답한 기분일까.
중랑천, 탄천, 홍제천, 안양천 서울에 대표적인 천들은 모두 한강에서 역류한 물에 의한 범람이 발생했다. 한강변의 아파트의 피해는 금액적으로는 더 큰 피해를 입었겠지만 결국 삶에 있어 단독주택단지의 못 사는 사람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많은 사람들이 한동안 긴급하게 구성된 대피시설에서의 생활이 필요할 것이다.
수많은 수해민들로 대피시설은 모두 가득 차고 아직 고립에서 탈출하지 못한 수해민들이 아파트 고층에 가득하여 구조를 요청하고 있지만 구조환경은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한번 휩쓸고 간 홍수에 가장 큰 피해를 본 곳 중 하나는 바로 구조를 진행하는 소방서였다. 동시에 많은 지역에 대피와 구조활동을 펼치고는 순식간에 밀려오는 물길의 시간을 피하지 못해 서울의 50퍼센트가 넘는 소방차를 침수로 잃게 된 것이다. 그래도 구조활동을 수행하며 긴급한 상황에 대처하는 소방관의 인명피해가 미비했던 것이 다행일 것이다. 26명의 소방관이 다친 것으로 끝난 것이 다행의 결과 수치였다.
소방차의 피해는 소방차가 커다란 몸집에 무거운 물을 싣고 다님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경찰차와 구급차 소방차는 모두 긴급한 상황에 출동하여 사이렌을 키고 비켜주는 다른 차를 질러가는 상황이 있지만, 경찰차와 구급차는 빈차로 이동하여 사람을 싣고 돌아오지만 소방차는 거꾸로 항상 육중한 장비와 가득한 물을 싣고 다니다가 물을 뿌리고 빈차로 돌아오는 차량이다. 커다란 차체와 무거운 무게는 좁은 길이나 후진을 하기에 어려운 환경을 만든다. 다른 차가 앞뒤로 두 번 이동하여 꺾는 길도 소방차에게 조금씩 움직여 두 번 이동하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단독주택 같은 불법주차가 많은 지역에서 자주 발생하는 문제로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로 남아있다. 이번 홍수에 상당수의 소방차가 한강 주변에서 빠져나오다 주변 주차로 인한 좁은 통로를 나오는 데 시간이 걸려 결국 차를 포기하는 상황이 상당히 발생한 것이다. 장비를 잃은 구조대는 그 편성에 대해 혼란 속에 있는 상황이고 이는 지금 당장 과부하 상태의 구조요청에 대응하기 더욱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길고 긴 장마로 강원도도 곳곳이 피해를 입었지만 댐이 무너진 서울에 비교하면 온전한 환경이었기에 우리는 부모님이 계시는 원주로 가기로 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서울을 버리고 강원도로 또는 남쪽으로 향하였다. 강북에서 원주로 넘어가기 위해 한강을 건너야 했는데 강 상류 쪽 다리 상당수가 물과 함께 떠내려온 잔해와 충돌해 붕괴되어 강을 건널 수가 없었다. 붕괴되지 않은 많은 다리도 균열로 붕괴 위기에 놓이게 되어 교통이 완전히 통제된 상태로 대부분의 다리는 강을 건널 수 없게 되었다.
영상을 통해 보면 한강의 다리는 물과 함께 떠내려온 나무나 건축물 잔해에 수없이 부딪히며 받은 충격에 교각이 무너지거나 금이 가면서 상판도 무너지거나 균열이 생겼다. 상판이 한강으로 또다시 추락한 성수대교는 오래전 똑같이 무너지던 재난의 날을 다시금 그려냈다. 그리고 아직 봉쇄되지 않은 다리도 아마 하류의 몇몇 다리를 제외하고는 전부 정밀 보수를 해야 할 것이다. 한강의 모든 다리가 보수로 통행 불가가 되는 상황을 상상할 때 그것은 곧 교통지옥일 것이다. 강남과 강북은 갈라져 각각의 섬과 같은 상황이 될 것이다. 서울은 동작대교가 지금 시점 강을 건널 수 있는 선택지의 하나였다. 하지만 이곳마저도 정밀검사에서 통행 불가가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통재 불능의 재난의 현장이 혼란을 겪는 이유 중 또 하나는 상위층 정치인을 비롯한 대통령의 부재일 것이다. 대통령실은 상당수 인원이 이번 재난을 통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아마도 내가 받았던 대피 안내와 비슷한 류의 방법을 통해서 서울을 떠났을 거라 생각한다. 헬리콥터를 통해 미군 기지로 이동한 대통령은 주요 참모진과 함께 미국으로 떠나는 미군 비행기를 탔다고 한다. 지금은 그곳에서 임시정부라 말하는 대통령실을 꾸리고 대한민국의 복구를 위해 힘쓰고 있다 말하고 있지만 여기 남아있는 사람은, 심지여 방송조차 자막 기사로 언급이 끝인 내용으로 그것을 믿는 사람은 없다. 국내에 남은 국회의원 정치인 일부가 임시내각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실정이다.
이들이 돌아오지 않고 계속해서 공항을 통해 해외로 떠나는 이유는 미국이 동아시아 장마의 종료와 바로 다음에 오는 슈퍼태풍에 대한 재난 예보에서 비롯된 것이다. 미국의 태풍에 대한 이야기는 내가 쓴 이야기와 겹치기 시작한 것 같았다. 겹쳐진 이야기는 계속해서 직물의 가로줄과 세로줄의 짜임처럼 서로 간의 세계에 영향을 주는 건지 지속해서 이야기를 얽어나가려 했다.
나는 다시금 미국 대사관의 담당자 전화를 받았다. 이번에는 안내 멘트의 담당자가 아닌 사람과의 대화였다.
안녕하세요 미대사관 재난 대응 담당자입니다. 정윤찬 씨는 이번 사태에 대한 재난 대피 대상자로 연락드렸습니다. 정윤찬 씨가 지난 재난 대피 상황에서 탈출하지 못했음을 확인했으며 다시 연락드렸습니다.
그런데 저는 한국인인데 미국 대사관과 무슨 연관이 있는 거죠?
현재 예보된 슈퍼 태풍에 대해 알고 계시죠. 태풍은 이번 홍수와 겹쳐 많은 인명피해를 가져올 것입니다. 정윤찬 씨가 대상자로 선정되는 데는 인터넷에 게시된 글을 이유로 특별 선별자로 구분되셨습니다. 중요 인물에 대한 대피 명령에 의해 연락드립니다.
인터넷 소설이 이유인가요?
직물의 얽혀진 실가닥같이 소설과 현실의 상상이 가로와 세로줄로 계속해서 서로 간에 짜여나가며 우주선 발사를 바라보는 상상 속의 상황을 떠올렸다. 직물을 짜기 위에 베틀이 움직이고 가로실을 놓는 북이 세로실 사이를 왔다 갔다 오가며 두 개의 이야기를 하나로 완성해나가는 모습이 떠올랐다. 생각에서 살짝 한 발짝 나와 현실을 바라보고자 노력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저희 가족과 친구도 같이 대피가 가능한가요?
현재 다른 분들은 대피 명단에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원칙상 친구나 주변인은 불가능합니다. 또 중요 등급 대상으로 포함되지는 않아 가족분들은 대상에서 불가한 상태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네. 그러면 제가 대피를 한다면 어떤 일을 해야 하는 건가요.
가능하다면 인터넷에 올라온 소설의 이후 내용을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야기 드렸듯이 인터넷의 글이 목표한 대상자 선정 이유입니다. 해당 글을 확보해 같이 이동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아마도 아시겠지만 며칠간 인터넷 글에 대한 정보 통제 조치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통제가 종료되어 더 이상의 차단은 이루어지지 않아 해당 시스템은 정상 동작할 것입니다.
제 이야기는 결말이 완성되지 않았네요. 소설 속에서는 결말까지 모두 마무리된 걸로 나왔지만 사실 소설 속의 이야기일 뿐이네요.
정리되지 않은 내용도 괜찮습니다. 아이디어 노트도 포함되고요. 그리고 대피에 대한 확인이 필요합니다. 이동 수단을 제공하기 위해 위해 위치 확인 부탁드립니다.
음. 생각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시간이 있을까요.
생각을 필요로 하시는군요. 시간은 24시간을 드리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지금은 재난상황으로 시간이 중요합니다. 주어진 시간은 24시간이 전부이며, 그 이후는 저희도 방법이 없습니다.
전화가 끊어지자 정돈되어 펼쳐져 있던 것 같은 가로 세로의 선들이 서로 엉키며 실뭉치를 만들면서 꼬여졌다. 현실에 있는 나와 현실에 보이는 상상할지 못했던 재난의 상황과 소설 속 상상의 상황은 서로 정돈되지 않고 동시에 머릿속에서 꼬여버린 것이다.
저녁시간까지 생각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생각은 서로 간의 꼬리를 물고 빙빙 돌고 있었다. 저녁이 되어 강원도의 부모님 집 천장을 바라보고는 생각을 해볼까 싶었지만 여기 와서도 끊임없이 정리하느라 하루의 시간을 소모하고 그만큼 소비된 체력이 이제는 바닥이라 머릿속 복잡한 생각보다 몸의 피로가 앞섰고 고민보다 잠이 먼저 머릿속을 차지해 깊은 잠에 빠졌다.
중요한 일은 가끔 생각 없이 결론을 내리곤 하는데 다음날 나는 가족을 떠나지 않기로 결정했다. 머릿속 생각의 목적지는 미국이 아닌 소설의 마지막을 향하기로 결정했다. 꿈도 꾸지 않고 잤던 간밤의 깊은 잠 이후 맑은 정신으로의 아침의 결정을 믿기로 한 건지 계속되는 새로운 곳으로의 여행을 피로한 몸이 포기한 건지는 결정을 한 이후에는 중요하지 않았다. 엉켜있는 머릿속 실타래를 푸는 것보다는 가위로 끊어내고 앞에 있는 가족의 현실에 손을 보태고자 한 결정일 뿐이다. 엉켜있던 실타래의 주변 줄을 몇 개 끊어내고 나자 그 안에 있었던 것 중 가장 중요한 실 한 가닥을 길게 끄집어 낼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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