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02

(습작소설)장마-06

 

홍수

[긴급] 청평댐 범람. 하천 주변 지역 주민들은 즉시 고지대로 대피해 주시기 바랍니다.

[긴급] 팔당댐 범람 위기. 수도권 서울 지역 주민들은 즉시 고지대로 대피해 주시기 바랍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현실감 없는 문자를 두 번 바라보았다. 그리고 동시에 두 개를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첫 번째 두 번째 문자를 순서로 바라보았다. 청평댐이 범람. 거대한 댐 위로 물이 넘치고 있다. 댐이 무너진 건가. 아직 무너지지는 않은 건가. 물은 팔당댐에 도달하여 또다시 댐에 위력을 가할 것이다. 팔당댐을 지나면 서울로 물이 넘어온다. 고지대는 어디지. 여기는 고지대일까.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언덕진 오래된 단독주택 지역이다. 언덕에 밀집된 단독주택이기에 고지대 일수 있겠다. 하지만 앞에 바라보이는 청계천이 있기에 침수 우려가 있는 지역일 것이다. 언덕 위쪽 산동내는 아니지만 산동내 가는 길목의 기다란 경사진 골목을 4번 꺾어 오르며 있는 곳에 위치한 집 2층의 부엌이 분리된 원룸이었다.

이곳 자취방에 독립하기 전에 부모님과 살던 지역도 과거 범람으로 인해 침수 피해를 매년 전해 듣고 때때로는 사망자가 나왔다는 소식도 들을 수 있는 중랑천 근방의 단독주택이었다. 비가 많이 오는 여름 장마철이면 물이 뚝을 넘을랑 말랑한다는 이야기와 저지대 반지하 주민은 주택이 침수되어 대피하는 소식을 들었지만 중랑천 바로 옆집이 아닌 경사를 낀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있는 우리 집은 전혀 아무 일도 없다는 것을 경험했다. 사실 아이 때의 장마철 침수 이야기였고 실질적인 사건은 어른들의 이야기였기에 기억은 사실과 다를 수도 있는 내용이었다. 그래도 그때 나의 기준으로 고지대에 살고 있었고 집 이외의 다른 곳으로 대피할 장소도 알지 못해 홍수로부터의 대피에 대해 더 이상 알지도 생각하지도 못했다. 지금은 독립된 삶을 사는 어른으로의 상황이지만 키가 큰 아이의 모습을 가지고 살고 있는지 대피에 대한 생각이나 고지대에 대한 위치나 모두 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먼저 지금은 강원도로 주거지를 옮겨 자식을 독립시킨 이후 삶을 살고 계시는 부모님께 전화를 했다. 이동전화는 급작스러운 통화량을 견디지 못하는지 생전 들어본 적 없었던 통화량 초과 안내 메시지만 반복될 뿐 어디에도 연결할 수 없었다.

전화 다음에는 인터넷을 연결했다. 네이버 첫 화면은 여전히 여러 색으로 구성된 날씨에 대한 경고와 정보들로 변한 것 없는 정보를 표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긴급 문자의 내용과 같은 댐에 대한 속보가 움직이는 뉴스 정보 창 텍스트 영역에 표시되었다. 즉시 해당 뉴스를 클릭했지만 속보 뉴스는 아직 내용을 포함하지 않고 있었다.

다음은 티비를 켜보았다. 방송국 프로그램은 예능과 보지 않는 정보 교양 재방송 프로그램으로 편성돼있었다. 게임을 위해 집에 설치된 티비에서 보통은 보지 않는 방송이었기에 나는 집에 돈 주고 가입하는 인터넷 티비에 가입하지 않아 24시간 뉴스 채널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때문에 뉴스를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뉴스를 보지 못함에도 이럴 때를 위해서 인터넷 티비에 가입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선택하지 않는 옵션인 안테나를 통한 공중파 방송 시청 방식을 택한 나였다.

과거 아날로그 방송 시절에는 모든 사람들이 안테나선을 연결하여 말 그대로 공중파 방송을 시청했었는데 방안의 안테나를 움직임에 따라 나오는 채널과 나오지 않는 채널 그리고 아날로그 노이즈가 섞인 화면을 시청하는 방식이었기에 케이블만 연결하면 안테나 없이 더 많은 채널을 시청하는 것과 비교해 공중파는 뒤처진 방식일 것이다. 그래도 이제는 디지털 공중파 시대로 UHD 화면에 이르기까지 안테나로 시청할 수 있는 시대로 때로는 케이블의 FHD로 시청보다는 선명한 화질의 화면을 시청할 수 있는데 계속되는 방향성인지 거의 모든 사람들은 유선 또는 인터넷 티비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몇 개 없는 채널을 돌리다 문자와 동일한 내용이 화면 하단 자막에 나오는 것을 보고 뉴스를 잠시 기다렸다. 기다리다 생각해 보니 재난상황에 바보상자를 조작하고 있는 바보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생각은 꼬리를 물어 한강을 통해 어두운 벽처럼 가까이 다가오며, 강변에 있는 나무들을 삼키는 어두운 물결의 움직임을 상상했다. 물결의 움직임은 크기를 짐작할 수 없었고 시간을 느리게 만드는 듯이 일렁이며 다가왔다. 상상의 시간을 깨뜨린 건 휴대폰 전화벨 소리였다.

전화가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왔는지까진 생각이 가지는 못하고, 우선은 머릿속 상상을 떨쳐버리고는 전화를 보았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는데 스팸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전화번호였다.

정윤찬 씨 되시나요?

네. 그런데 누구시죠.

미국 대사관 재난 대피 담당자입니다. 재난 발생 매뉴얼에 따라 안내드립니다. 정윤찬 씨는 한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재난상황 등급에 대피 대상 목록에 포함되어 연락드렸습니다. 긴급 탈출 수단은 헬리콥터입니다. 17시 20분 서초구청 사이트에 5분 후 17시 25분 이륙합니다. 2차 이동 수단은 버스로 이동합니다 17시 신사역 출발 17시 30분 서초구청 출발하여 이동합니다. 안내는 재난 통신망을 통한 문자 안내를 통해 추가 확인 가능합니다. 다시 한번 안내드립니다. 안내는 재난 통신망을 통한 문자 안내를 통해 추가 확인 가능합니다.

나는 머릿속으로 이어지지 않는 내용을 그저 듣고 있었다. 통화를 하고 있는 대사관 담당자의 말투는 자동응답의 안내 목소리인지 아니면 이미 수 십 번 반복적인 이야기를 전달하며 의미가 희석된 목소리인지 대화라는 상호 간 소통의 의미는 없는 단순 이야기 전달이었다. 상상하지도 못했던 미국 대사관 전달이라는 대화 속 메시지가 잠시 완료된 것 같은 쉼표의 타이밍을 느끼고 순간적으로 말을 해야 할 필요의 느낌으로 생각나는 데로 질문을 했다.

저는 차가 없어 이동이 안되는데요?

이 전달사항은 비상 통신망을 통한 일방 전달 프로토콜입니다. 안내드린 재난 통신망 문자로 필요정보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정윤찬 씨의 메시지 수신이 확인되어 메시지 전단을 완료합니다. 안내는 이미 전달한 재난 통신망 문자를 통해 확인 바랍니다.

메시지의 쉼표의 타이밍은 내 질문이나 확인을 기다리는 의도였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전화 간 문자가 수신된 진동이 왔고, 마지막 말을 끝으로 통화는 즉시 끊어졌다. 전화 통화 간에 전달된 문자 메시지에는 대화와 정확히 일치하는 내용의 문자가 와 있었다. 마지막에는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면 해당 재난 통신망 문자 안내를 통해 가능하다는 정보에 따라 같은 전화번호로 내가 했던 질문을 다시 답장해 보았다.

저는 차가 없어 이동이 안되는데요?

그리고 내가 보낸 답장에 바로 문자 답이 왔다.

탈출 수단은 정해진 지역에서 정해진 시간을 통해 여러 사람이 같이 이동하게 됩니다. 자가 교통수단이나 대중교통을 통해 정해진 시간에 해당 장소로 이동하시면 본인 확인을 통해 재난사항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의미 없는 문자 답이었다. 재난상황에도 대중교통인 건가? 지하철을 타봐야 하는 건가? 머리는 이곳 내 방안에서는 정보를 더 이상 얻지 못하자 밖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를 갈망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지하철이든 아니든 밖을 나가봐야 할 것 같았다. 준비를 시작하려는 때 밖에서 구원의 소리가 들려왔다.

준호였다. 준호는 집 문을 두드리며 나를 불렀다. 문밖에는 우산도 쓰지 않고 비 물에 수영이라도 하고 온 듯 온몸에 물을 먹고 있는 준호가 있었다. 준호의 불편해 보이는 젖은 셔츠가 일하다가 바로 온 모습을 보여주었다.

차도 없는 인간 구조하러 형님이 왔다. 나와 빨리 가자.

준호는 멀지 않은 행정복지센터에서 공무원 일을 하고 있다. 우리 동은 아니기에 일하는 곳이 찾아가지 않는 이상 일하는 곳에서 만나지는 않는다. 나는 아직도 행정복지센터를 동사무소라 말하곤 하는데 그때마다. 행정복지센터라고 정정해 주는 준호였다. 오래전부터 불러오던 게 있는지라 동사무소가 말하기 가장 편한데 이름을 맨날 바꾸는데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전에는 주민센터로 이름을 부르라고 했었는데 지금은 또 행정복지센터이다. 행정복지센터라는 용어는 그래도 공무원에게 있어 이미 많이 비화되어버린 동사무소란 용어보다는 사기를 북돋아 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를 두고 있는 상황으로 행정복지센터라고 불러 주는 게 당연하겠지만 머리보다 말이 빨리 나올 때는 동사무소라는 말이 아직도 나오고 있었다.

준호의 아반떼 자동차 옆좌석에는 다시금 일하다 왔다는 표시로 행정복지센터에서 입었던 민방위복이 놓여 있었고 뒷좌석에는 옷가지와 가방이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앞 좌석의 옷을 간단히 가져온 가방과 같이 뒷자리로 던져두고 젖은 몸으로 서둘러 차에 탔다. 밖에 사람들은 이미 떠나기 위한 사람과 집으로 대피하기 위한 사람들로 서로 간에 반대 방향을 향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 문자 봐봐. 여기로 갈수 있을까?

이게 뭐야. 이거 진짜 문자야? 헬리콥터 타러 가는 거야?

사람들은 한강을 중심으로 반대편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한강 주변에서 북쪽으로 향하는 방향의 도로는 신호와 차들로 뒤엉켜 거의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반대로 한강 다리로 가는 차는 비교적 적은 수로 막힘이 없었지만, 사거리는 이미 정체된 차로 사거리를 건널 때마다 서로 뒤엉켜 시간이 걸리는 건 동일한 상황이었다.

나는 조수석에서 라디오를 켜고 휴대폰 인터넷을 통해 상황을 살펴보았다. 라디오에서는 재난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특별한 정보를 얻으려는 의도와 다르게 문자에 담긴 청평댐 범람과 팔당댐 범람 위험 그리고 고지대로 대피하라는 이야기만을 연신 반복하는 목소리뿐이었다. 인터넷도 상황은 같았다. 새로운 정보가 없었다. 라디오와 인터넷 뉴스를 거쳐 결국 커뮤니티 게시판에 정보를 얻기 위해 들어갔다.

커뮤니티 게시판도 혼돈의 장소가 되어있었다. 아파트는 침수되지 않는다라는 의견과 저지대 아파트도 침수되니 대피해야 한다는 의견으로 싸우고 있었고 청평댐이 붕괴된다는 의견과 댐은 괜찮을 거라는 의견이 싸우고 있었다. 사실 여부를 알 수 없는 의미 없는 논쟁은 넘겨두고 도로 상황을 살폈다. 대부분 어디 도로에서 꼼짝도 못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모두들 서울 한강을 기준으로 남북으로 멀어지고 있었으며 차가 밀려 강 하류 방향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있었다. 지금 공개되어 볼 수 있었던 도로 씨씨티비 인터넷 조회는 모두 먹통이 되어있다는 정보와 서울 이통사 전화도 먹통이 되어있다는 정리 글이 어느 정도 확인 후 정리된 글이었다.

사실을 찾고 있는 동안 긴급 문자 안내가 가장 먼저 중요한 사실을 통보했다. 청평댐은 댐을 넘은 수위로 결국 붕괴되고 말았다는 내용이 전달되었다. 라디오와 인터넷 게시판의 사람들도 동시에 같은 사실을 전달받아 순간 모든 전달 내용이 청평댐 붕괴 사실을 전하고 있었다.

모두가 생각하는 사실은 다음 팔당댐이었다. 팔당댐은 그간 내린 비로 수위를 가득 채우고 있고, 모든 수문을 개방했지만, 상류에서 계속해서 밀러 드는 물 때문에 수위가 내려가지 않고 있었다. 청평댐의 물이 팔당댐에 도달하면 팔당댐도 붕괴 위험에 놓이게 되었다.

가장 좋은 이동 방향을 찾기 위해 라디오 방송 채널을 돌리며 찾아보았다. 정부는 강북 쪽은 북한산 방향으로 강남 쪽은 관악산 방향으로 이동을 안내하고 있었다.

라디오 방송 진행자는 이제 여의도는 대피장소가 되어 방송을 전환하고 이곳을 떠나게 되었다는 안내를 마지막으로 하고 있었다. 인터넷을 통해서는 재난방송 주관사 KBS는 대피로 모든 KBS 방송이 비상 안내로 전환됐다는 내용이 이야기되었다. KBS에서는 지금은 아무 필요 없는 장마 태풍 시 대피방법만을 연신 보여준다는 비아냥 글이었다.

내가 전달하는 이야기를 듣던 준호가 한강 부근에 접어들었다는 이야기로 휴대폰에서 시선을 떼고 밖을 관찰했다. 항상 막히는 한강 다리 주변으로 오자 다리를 건너기 위한 차들이 줄 서 있었다.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에는 도로를 빠져나오기 위한 자동차 줄이 다리 위로 길게 늘어서 보였다. 가끔 차들이 비어있는 강변북로 도로를 빠르게 가로질러 가는 한대의 차가 보였다. 강변북로에서 빠져나오는 차들이 다리를 건너는 길을 막고 있었다. 고수부지는 장마로 인한 끊임없는 비로 이미 모두 잠겨버린 지 오래였다. 주차장이라던가 고수부지 휴식공간은 강과 구분할 수 없었고, 나무의 윗부분이 고수부지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다리를 건너기 위해 여기까지 시간을 소모하고 왔지만 대략 강남으로 건너가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걸로 보인다. 시계를 바라보니 시간에 목적한 서초까지 도달할 수 없는 시간이다. 시간은 방금 오후 5시를 넘기고 있었다. 그리고 팔당댐과 이곳에 물이 도착하는 시간도 머리 한편에서 계산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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